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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월을 말하다

(앵커)
5월 항쟁 기간에 보여준
의료진들의 헌신을
조명하는 기획보도,
오늘이 마지막 순서입니다.

죽을 고비에서 만난
당시의 시민군과 의료진은
39 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궁 욱 기자입니다.
(기자)

5.18 첫 총상 피해자인 김영찬 씨.

당시 조대부고 3학년이던 김 씨는 1980년 5월 19일 오후 3시쯤 계림동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았습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장갑차의 움직임을 저지하려던 김 씨는 계엄군이 쏜 총의 유탄에 복부를 맞아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인터뷰)김영찬/5.18 첫 총상 부상자(당시 조대부고 3학년)
"바닥에 아스팔트에 불이 타타타타 튀는걸 내가 봤거든요. 이렇게 가다가 돌아보니까 바닥에 튀고 튀어온 총알이 배에 맞은거죠"

김 씨가 의식을 차린 것은 사흘 뒤인 21일.

전남대병원 의료진들은 김 씨의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고, 파열된 장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전남대병원 레지던트였던 김영진 의사와 의료진들은 김씨를 살리기 위해 7번이나 수술을 했습니다.

(인터뷰)김영진/전남대학교병원 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전공의)
"출혈도 많았고 장이 총알을 맞아서 소장하고 대장하고 천공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막염이 되어서 오염도 되어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환자와 의사로 만났던 이들이 39년만에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환자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20대 젊은 의사는 흰머리 교수가 되었습니다.

39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인터뷰)김영진/전남대학교병원 교수(당시 전남대병원 외과 전공의)
"조금 걱정은 되는데 (무서워서) 병원을 못 가신다니까 조금 걱정은 되는데 그런것(부상 후유증)들을 다 잘 극복한 것 같아서 저는 엄청 기분이 좋아요"

(인터뷰)김영찬/5.18 첫 총상 부상자(당시 조대부고 3학년)
"(앞으로 자주)찾아뵙고 싶네요. 그리고 죽을때까지 제 생명의 은인으로 항상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5.18 당시 환자와 의료진으로 만났다 시간이 흘러 민주화유공자와 생명의 은인으로 다시 만난 이들은 또 있습니다.

5.18 피해자인 이민오 씨와 김태수 씨는 5.18 당시 국군통합병원장이었던 김연균 원장과 작년부터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인터뷰)김태수/버스에서 무릎 총상
"항상 제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이죠. 작년에 저희들 몇몇 분 통합병원에 같이 계셨던(진료 받았던) 분들하고(의료진들을 찾아뵙고 있습니다)"

전남대병원과 국군통합병원, 기독병원 등에 보관된 진료 기록과 당시 근무했던 수많은 의료진들의 증언은 그 날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5.18 당시 의료진들의 헌신을 담은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예정입니다.

(스탠드업)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의료진과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광주 시민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난 이들의 인연은 오월 광주의 역사이자 현재입니다.

MBC뉴스 남궁 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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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