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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승소확정2 - 감격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앵커)
오늘 대법원 판결을 받기까지
할머니들은
모진 세월을 견뎌야했습니다./

억울한 사정을 모르는
사회의 편견과 맞서야했고,
한없이 지연되는
재판 결과를 기다리며
꿋꿋하게 버텨야 했습니다.//

기다림 속에 몸져 눕거나
돌아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한많은 할머니들의 지난 세월을
남궁 욱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기자)

한 많은 세월을 꿋꿋하게 버텨왔던
양금덕 할머니지만
너무도 간절한 기다림에 몸져 누웠습니다.

최종 판결을 직접 들으러
대법원에 가고 싶었지만
의사의 만류로 병상에서
결과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인터뷰)양금덕 할머니
"교장선생님이 중학교 보내준다 했는데 나고야 미쓰비시로 보내 가지고 이 고통을
당하고 살았는데 한이 안 맺히겠어 내가"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근로정신대에 동원된 김성주 할머니.

하지만 비행기 공장에 간 열네살 소녀에게는 금속을 자르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돈 한푼 받지 못하고 귀국한 김 할머니를
정작 힘들게 한 건 주변의 오해였습니다.

(인터뷰)김성주 할머니(2009년 8월 15일 광주MBC방송
"(남편이)남자들, 일본놈들, 군인들하고 상대 안했어? 몇명이나 돼? 난 모른다고, 그런거는 모른다고 그러면서 그날부터 남편이 대번에 이렇게 잘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해버리더라고요"

1999년 일본에서 재판을 시작했지만
역시나 돌아온 건 패소 판결이었습니다.

(녹취)일본 TV 뉴스(2005년 2월 24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과 사죄를 요구 한 건에 대해 나고야 지방재판소는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기다리던
피해자 가운데 김혜옥 할머니는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스탠드업)남은 피해자들은 지난 2013년
한국에서 재판을 새로 시작했지만
조국도 할머니들을 실망시킨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1심과 2심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법원은 3년이 지나도록 선고를 미뤘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에
할머니들 재판이 이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인터뷰C.G)김정희 변호사
"결국은 사법부 대법원이 적극적으로 재판에 관여를 하지 않았나. 그리고 불순한 의도로 재판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라는 걸 추정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힘들게 이끌어왔던 재판이기에
할머니들은 오늘의 승리가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인터뷰)김성주 할머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어서 아주 고통을 받던 중에 우리 모든 선생님들이 더불어 이렇게 뜻을 이뤄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MBC뉴스 남궁 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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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