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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리포트6) 33년 전 오늘 "시민공동체의 등장"

(앵커)

광주MBC 5.18 연속기획보도 '33년 전 오늘'

이번 시간엔 항쟁 열흘 동안 시민들이 보여준 헌신과 도덕성, 그리고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조명해보겠습니다.

항쟁에 참여했던 광주시민이라면 누구나 서로 돕고 나눴던 대동의 기억이 생생하실 겁니다.

김철원 앵커와 함께 그 때로 돌아가 보시죠.

(기자)

계엄군이 물러가고 해방 광주의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1980.5.22.목요일. 구름많음. 낮최고기온 28도)

도청 앞 광장엔 계엄군을 몰아냈다는 기쁨보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녹취)"내가 원수를 갚겠습니다. 제가 총 쏴서 죽여버릴거다. 이 개새끼들아. 아~"

내 남편, 내 아버지, 내 자식의 이름이 저기 사망자 명단에 있지 않을까 보고 또 봅니다.

가족의 시신을 확인한 이들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시민들은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습니다.

할아버지도 갓난아기 엄마도 5.18 이전 민족민주화성회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도청 앞 광장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댔습니다.

(녹취)광주시민 궐기대회 발언자/
"광주시민들은 최후의 1인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 성전에 여러분 함께 동참해주십시오."

고립무원의 상태였지만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자며 서로 다짐하고 격려했습니다.

(인터뷰)김태종/당시 시민궐기대회 사회자,(화면 속 당사자)
"담배는 한보루 이상 안된다 라면은 한 박스 이상 안 판다.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자율적인 공동체를 이뤘는데 그런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제일 강했던 것 같아요.)

교통과 통신 투절로 식량과 의약품이 절대 부족했던 그 때.

시민들은 아무 조건 없이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았습니다.

약국에서는 의약품을 가져다줬고 상인들은 음료수와 과일을 내놓았습니다.

내놓을 게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피를 내놓았습니다.

(인터뷰)문응주/정형외과 의사(당시 전남대병원 인턴)
"(헌혈 행렬이) 전대병원 담 죽 있고 또 남광주 사거리 병무청 쪽으로 죽 있는데 줄이 끊어지질 않았어요. 피가 남아가지고 우리가 다른 병원으로 보내줄 정도가 됐죠."

어머니들은 누구랄 것 없이 거리에 솥을 걸고 밥을 지었습니다.

양동시장과 남광주시장, 대인시장 상인들은 장사를 작파하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을 먹였습니다.

(인터뷰)곽미순(당시 22세, 회사원)
"양 3동 어머니들도 엄청 고생 많이 했어요. 밥 다 걷어서 해가지고 갖다 나르고 주고 발산다리에서 김밥 막 실어주고 그랬거든요."

강절도 등 범죄 발생률은 평상시보다 오히려 낮았습니다.

총기 수천정이 있어지만 오발 등 총기사고가 없었고 시내 금은방이나 은행 등엔 단 한 건의 금융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시민 궐기 대회 때 가장 많이 불린 노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애국가였습니다.

(녹취) 총기 든 병사 애국가 부르는 모습
"애국가 제창 모습..."

주먹밥과 헌혈, 완벽한 치안을 보여준 시민들의 헌신과 시민정신은 5.18의 신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시민들을 폭도로 내몰았던 전두환 신군부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영상취재 강성우
C.G. 오청미
광주MBC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