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5.18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들여다보는 광주mbc 5.18 40주년 연중기획 <내인생의 오일팔>입니다.   오늘은 40년 전 광주시내에서 가두방송 마이크를 잡았던 차명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김철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40년 전 오월, 광주에는 언론이 없었습니다. 신문기자들은 펜을 꺾었고 방송사는 계엄군 발표만을 보도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시민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습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양재학원에 다니던 19살 학원생 차명숙씨가 가두방송 마이크를 들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터뷰)차명숙 5.18 당시 가두방송 "  ‘방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방송국이’    ‘신문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 확성기로 이 사실을 알리자’ ‘방송국 가서 요구하자’ 그렇게 시작이 된 겁니다. "   1980년 5월 20일 오후부터 도청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 아침까지 차를 타고 광주시내를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인터뷰)차명숙 5.18 당시 가두방송 "1980년 5월 20일 새벽에 그때는 간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광주를 지킵시다” “도청 앞으로 아침 7시까지 모여주세요.”하고 호소를 한 거죠."   하지만 도청 앞 집단발포로 수십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치는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고 차씨는 계엄당국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담양이 고향이고 광주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차씨는 혹독한 고문에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으로 조작되고 말았고, 이런 누명 때문에 출소하고 나서도 광주를 떠나야 했습니다.   가두방송 마이크를 잡았다는 이유로 마음의 큰 상처를 입은 차씨는 그러나 이후 경북 안동에서 홍어를 파는 식당을 운영하며 대구경북 지역민들에게 오월 광주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으로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뷰)차명숙 5.18 당시 가두방송 "제가 기억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진실을 밝히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도청 앞 집단발포 때 희생된 광주시민들이 자신의 가두방송을 듣고 금남로에 나왔다 변을 당했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아직도 차씨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인터뷰)차명숙 5.18 당시 가두방송 "5월 21일 아침 7시까지 ‘도청 앞으로 오세요’ 호소하지 않고 오후 1시까지 있지 않았다면 좀 덜 다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서 돌아가신 분들에게 정말 미안하죠. 죄송하고."   반성도 않고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학살책임자 전두환의 인생과 가두방송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차명숙씨의 인생을 비교해보면 '인간의 양심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김철원
2020-12-04
[VOD]518뉴스

(앵커) 어제 전두환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표현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 판결이 5.18 진상조사위원회 활동과 역사왜곡 처벌법 제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송정근 기자입니다.   (기자)   80년 5.18 민주항쟁 당시 광주 도심 곳곳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한 사법부.   (CG)5월 21일에는 500MD헬기가 광주천 불로교 인근에서, 5월 27일엔 UH-1H헬기가 마운트에 거친 기관총으로 전일빌딩에 사격한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의 폭동 때문에 자위권 차원에서 집단 발포를 했다는 전두환 신군부의 논리가 거짓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판결이었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과 공중 화력을 제공했다는 군문서, 국과수의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헬기사격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뚜렷한 물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재판의 성격이 5.18의 진상을 밝히는 게 아니었던 데다 80위원회와 511연구위원회 등이 당시 군 관련 자료를 은폐하거나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를 포함해 남은 진실을 밝히는 일인 5.18진상조사위원회에 맡겨져 있습니다.   (인터뷰)노영기/ 2007년 당시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과연 있었다면 언제, 어떻게, 누가 헬기 사격을 했었는가..그리고 그 명령 계통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가 하는 부분들은..."   진상규명과 함께 5.18 왜곡을 막을 제도 마련도 시급합니다.   (인터뷰)조진태/5.18 기념재단 상임이사 "(이번 재판에서) 사실 적시에 의해서 왜곡하거나 폄훼하거나 거짓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에 있어서는 이것을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거든요.."   더불어민주당이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당론으로 발의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반론도 있는만큼 야당과 국민들을 설득할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송정근
2020-12-01
[VOD]518뉴스

(앵커) 전두환 재판의 1심 선고가 내일(30) 나옵니다.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2년 반만인데요.   사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송정근 기자입니다.   (기자)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비난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재판을 서울에서 받겠다거나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법정에 불출석하며 재판을 질질 끄는 바람에 기소된 지 2년 6개월만에야 1심 선고가 내려집니다.   18차례 공판이 열리는 동안 전두환은 두 차례 출석했고, 그때마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며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사과나 반성은 커녕 법정에서 꾸벅꾸벅 조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녹취)2019년 3월 11일 "발표 명령 부인합니까?" "왜 이래"   하지만 헬기 사격을 직접 봤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국과수와 국방부 헬기사격 특별조사위원회도 헬기 사격은 명백하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찰은 이같은 증언과 증거를 토대로 전두환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이자 고소인인 조영대 신부도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했습니다.    ◀INT▶2020년 10월 5일(결심 공판 당시) 조영대 신부(고소인) "이번 재판을 통해서 5.18 진상규명으로 새출발하게 된다는 차원에서 이번 재판이 참으로 뜻이 깊은 것이죠."   전두환에게 유죄가 선고된다면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자위권 차원에서 총을 쏜 게 아니라 헬기에서 무차별 사격을 가한 사실상의 학살이었음을 입증하게 됩니다.   반면 무죄가 선고된다면 5.18 진상에 대한 논란 뿐만 아니라 5.18 역사 왜곡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광주시민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광주 법정에 쏠리고 있습니다.   MBC뉴스 송정근입니다.
송정근
2020-11-29
[VOD]518뉴스

(앵커) 5.18 민주화운동은 당시 광주의 중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까요?   5.18이 일어난지 일곱 달 뒤 고등학교 1학년들이 5.18을 주제로 쓴 작문집이 39년 만에 공개됐습니다.    이다현 기자입니다.   (기자)   (C.G) 5.18은 자유를 향한 거국적인 힘의 발산이다.   (C.G) 정부에서는 일부 불순 분자의 책동이라고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무책임한 말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지난 1981년 2월.    중학교 3학년의 눈으로 광주 항쟁을 경험했던 광주 석산고등학교 1학년들이 작성한 산문입니다.   무고한 시민과 또래의 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총칼에 희생되는 현장을 목격했던 학생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피의 투쟁'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서왕진 / 석산고 졸업생 "이 기록을 보면서 '아, 이런 정도의 생각을 했었구나', 아주 보통 평범한 1학년 청소년이 이런 정도의 생각을 했다면 상당히 보편적인 생각이었을 수 있겠다 이런 판단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이런 글들을 작성할 수 있었던 건 당시 국어 과목을 가르쳤던 이상윤 교사가 작문 과제를 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직 신군부의 서슬이 퍼런 시기.   곳곳에서 작용하던 감시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이상윤 교사는 자율적인 산문을 쓰게했고, 1학년 학생 573명 가운데 186명이 과제를 제출했습니다.   5.18을 신군부의 폭거에 대한 항쟁과 항거로 인식한 내용의 작문들은 세 달쯤 후 동료였던 후배 교사에게 전달됐습니다.   (인터뷰) 박형민 / 전 석산고 교사 "교사로서 그리고 살아남은 광주 시민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얼마나 많이 고민을 하셨을까 하는 그 선배님의 생각이 정말 몸과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고.."   이후로 천주교 광주대교구를 거쳐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보관하고 있는 작문집은 한 학술대회를 통해 전체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인터뷰) 홍인화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실장 "그때 당시 상황들을 재현할 수 있는 기록물의 하나로, 역사 속의 39년 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라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작문집을 통해 당시 광주 지역 학생들의 참여와 인식을 재구성하는데 활용해나갈 계획입니다.   MBC뉴스 이다현입니다.
이다현
2020-11-03
[VOD]518뉴스

(앵커) 1989년 상영 불가 통보를 받은 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인 올해 전국에서 개봉한 영화 <황무지>.   오늘(31) 감독과 배우들이 31년만에 광주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우종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영상음) 영화 <황무지>/ "더 이상 쏠 순 없었습니다. 도망쳤어요.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1980년 시민군을 진압하다 소녀를 사살한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죄를 양심선언 합니다.   (영상음) 영화 <황무지>/ "깨어나자, 병사여. 깨어나자, 민주주의여."   타인의 시선을 피해 도망다니던 병사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망월 묘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원치 않는 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의 고뇌를 다룬 영화 <황무지>.   영화는 1989년 군사정부로부터 상영불가 통보를 받은 지 31년만에 전국에서 개봉됐습니다.   (인터뷰) 조선묵/ 영화 <황무지> 김의기 역 "(31년 만에 개봉된 것 보면서) 역사는 앞으로 흘러가는구나를 느꼈고. 더 많은 진실규명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정말 아이러니하더라고요."   80년 광주에 대한 마음의 빚 때문에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는 영화로 다시 광주 시민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인터뷰) 서갑숙/ 영화 <황무지> 지미 역 "오늘 광주에서 영화관에서 상영된다고 해서 저는 특별히 광주에서 상영되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생각했어요."   피해자들의 아픔도 쉽게 말할 수 없던 시대에 계엄군의 고통을 이야기 했던 감독은 5.18 40주년인 지금까지도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영화 주인공인 계엄군들이 영화 대사처럼 양심고백에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태영/ 영화 <황무지, 5월의 고해> 감독 "학살한 병사들의 '내가 죽였습니다'라는 증언이 나와야 합니다. 아직까지 그런 고백이 안 나왔기 때문에 40년 동안 (진실 규명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MBC뉴스 우종훈입니다.
우종훈
2020-10-31
[VOD]518뉴스

(앵커) 3년 전 5.18 37주년 기념식 때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로 국민들을 눈물짓게 한 김소형씨, 기억하십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편지를 읽고 돌아서는 소형씨에게 다가가 안아줘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광주mbc 5.18 40주년 연중기획 <내인생의 오일팔> 오늘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태어나 5.18과 함께 자라온 김소형씨를 김철원 기자가 만났습니다.   (기자)   <이펙트>아빠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지만 제 가슴 속엔 언제나 아빠가 살아계세요.   김소형씨는 1980년 5월 18일 태어난 5.18 둥이입니다.   소형씨는 전남도청 근처 산부인과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당시 금남로 일대는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으로 난리가 난 상황이었습니다.   김씨의 부모는 아이를 조심스레 안고 쌍촌동으로 피신했지만 그 곳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을 막기 위해 김씨의 아버지 김재평씨가 창문을 이불로 막던 그 순간 계엄군의 총탄이 날아왔습니다.   (인터뷰)김소형/5.18유족(1980년 5월 18일생) "아빠가 하악골에 총탄을 맞았는데 엄마가 그 때 그 산후조리를 하고 있었지만 아빠가 너무 위급한 상황이어서 (아버지를 부축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임산부인 엄마가 개나리색 잠옷을 입고 계셨는데 나중에 돌아와보니 잠옷이 온통 피로 다 이렇게 물들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계엄군 총탄에 숨진 김재평씨는 딸 소형씨가 태어나기를 무척 기다려왔습니다.   (인터뷰)김소형/5.18유족(1980년 5월 18일생) "완도수협에 다니셨는데 저희 아빠 사무실 서랍에서 통장 묶음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보니까 저 돌 때 초등학교 입학할 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갈 때 시집갈 때 시기에 맞춰서 적금 들어놓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빠의 죽음이 자신의 탄생 때문이라고 자책하던 딸의 애절한 편지가 5.18 기념식 때 낭독됐고 국민들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인터뷰)김소형/5.18유족(1980년 5월 18일생) "사실 아빠가 저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어디 가서 우는 것 자체도 사실 사치였는데 그날은 그냥 마음껏 울어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우리 아빠도 살아계셨다면 저 연세에 저런 모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더라고요."   5.18이 40주년이 되면서 소형씨 나이도 마흔줄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직도 5.18 왜곡하거나 무시하는 이들을 보면답답하지만 5.18이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봐왔기에 제대로 바르게 알려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김소형 "저랑 같이 크고 있는 오일팔이 아프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계속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김철원
2020-10-23
[VOD]518뉴스

(앵커) 옛 전남도청 건물에는 5.18 당시 계엄군이 쏜 총탄 흔적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까지 정확히 확인된 적은 없었는데요.   도청 복원을 추진하는 정부가 방사선 장비를 동원해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탄흔 조사에 나섰습니다.   보도에 이다현 기자입니다.   (기자) 옛 전남도청 건물을 열화상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하얀 벽면과는 달리 열화상카메라로 보니 패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총탄 흔적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구역입니다.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지난 7월부터 탄흔 의심 구역 280여 곳을 열화상카메라와 금속탐지기를 동원해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20여 곳이 가장 유력한 탄흔 구역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총탄 흔적이 맞는지 더 정확하게 식별하기 위해 오는 19일부터 이곳에 투과성을 가진 방사선을 쏘기로 했습니다.   (스탠드업)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곳 도청 앞에 남아있는 나무인데, 여기에도 탄흔이 있을 것으로 의심돼 방사선 촬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인터뷰)임종수/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전시콘텐츠팀 중령 "사전에 사격을 먼저 해보고, 그 흔이 정확하게 식별이 되는지 안 되는지 여부를 확인했는데, 감마선 검사를 통해서도 일부의 탄 흔적이 보였고 흔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고요. 시범 테스트는 저희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방사선 촬영이 인체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외부 촬영은 야간에 진행하고, 건물 주위 25m 이내에는 시민들의 접근이 제한됩니다.   오월 단체는 옛 전남도청이 80년 오월 당시 최후항전지였던만큼 총탄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이번 조사로 탄흔이 발견되면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자행했던 총격을 입증할 수 있고, 나아가 진상규명에도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조진태 /5.18기념재단  이사 "전남도청 외벽의 탄흔은 자위권 발동하고는 전혀 상관 없이 무자비하게 무차별적으로 어떤 자기 의도를 갖고 발포를 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번 1차 조사가 끝나면 다음 달에는 옛 전남도청 별관과 상무관, 경찰국을 대상으로 2차 조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제는 흔적이 많이 지워져 버린 당시의 모습을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낼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다현입니다.
이다현
2020-10-15
[VOD]518뉴스

(앵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광주MBC 5.18 40주년 특별기획 '내인생의 오일팔' 입니다.   오늘은 5.18 때 구사일생한 의대생이 의료인이 된 이후 다른 5.18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삶을 소개합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1980년 5월 18일은 조선대 의대생이었던 이민오씨에게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광주일고 운동장에서 동문체육대회를 하던 중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놀라 달아나다 붙잡힌 겁니다.   군홧발에 수차례 배를 짓밟혀 췌장이 파열돼 이대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뷰)이민오 외과의원 원장(5.18 당시 조선대 의대생) "공수부대 3명이 저를 따라서 쫓아왔습니다. 군홧발로 저를 짓이겨서 배의 췌장이 파열되다보니까 피도 3000cc 가까이 빠져 나가 제가 쇼크에 빠졌습니다."   국군통합병원에서 대수술끝에 간신히 살아난 그에게는 사명 하나가 생겼습니다.   (인터뷰)이민오 외과의원 원장(5.18 당시 조선대 의대생) "저도 제가 죽을 걸로 생각했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 이건 내가 사회에 갚아야 될 빚이다.  베푸는 것만이 그 빚을 갚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화면전환) 이민오 원장에게 오늘 특별한 환자들이 찾았습니다.   국군통합병원에서 만나 함께 치료받았던 5.18 부상자들입니다.   좋은 시설과 큰 병원을 놔두고 굳이 허름하고 오래된 이 병원을 찾는 것은 동병상련의 이민오 원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지윤(5.18 때 집에서 계엄군에 의해 총상, 당시 임신 3개월) "5.18 끝난 이후에도 다른 사람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못 나누잖아요. 내 아픔을. 그러다보니까 열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데가 여기밖에 없어서 이 병원을 찾습니다."   (인터뷰)김태수(5.18 때 버스에서 계엄군에 의해 총상) "‘원장님 이러이러 해서 왔습니다’ 하면 두 말도 안 하고 영양제 놔주시고, 약도 몸에 좋은 걸로 처방해주시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보다 더 좋은 분이다 생각합니다."   본인도 5.18 때문에 죽을 뻔 했던 피해자이면서도 다른 5.18 피해자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이민오 원장. 자신이 부상자들을 도울 방법이 의술밖에 없음을 오히려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민오 외과의원 원장(5.18 당시 조선대 의대생) "5.18 피해자를 보면 괜히 안쓰럽고 도와줘야 되는데 제 능력이 의술 밖에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항상 그렇게 바라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김철원
2020-10-09
[VOD]518뉴스

(앵커) 5.18 정신을 국제사회와 공유하기 위해 광주시가 열고 있는 세계인권도시 포럼이 올해로 10회째를 맞았습니다. 5.18 40주년인 올해는 유엔과 유네스코가 공동 주최기관으로 참여해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김철원 기자입니다. (기자) 민주·인권·평화의 5·18 광주정신을 국내외 도시들과 나누고, 인권이 보장되는 도시공동체를 함께 만들기 위해 광주에서 열어오고 있는 세계인권도시 포럼이 개막했습니다. (녹취)이용섭 광주시장 "우리 광주도 국내외 인권도시, 인권단체들과 실천적 노력을 다하여 인권연대를 더욱 확장시켜 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는 특히 5.18 40주년을 맞아 특별한 기구들이 공동 주최기관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함께 해오던 행사를 올해부터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유네스코가 공동 주최기관으로 이름을 올린 겁니다. (녹취)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 "이 중요한 행사를 주최한 광주광역시에 감사드리며, 유네스코가 처음으로 공동주최로 참여하게 된 것도 더욱 기쁜 일입니다." 유엔의 인권관련 업무와 활동을 총괄하는 최고 직책인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이자 칠레 전 대통령은 광주에서 열리는 인권도시들의 네트워크행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 "광주는 스스로 인권도시임을 선언함으로써 과거의 아픈 기억을 지역은 물론 세계적 차원에서 인권을 위한 긍정적 힘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유엔기구가 참여하면서 올해 포럼부터는 세계 17개 도시의 시장이 참여하는 등 규모도 커졌습니다. (인터뷰)윤목현 광주시 민주인권평화국장 "일반적으로 유엔 대표기구가 지방 도시와 (행사를) 공동주최하지 않습니다. 지방정부인 광주시가 유엔의 대표기구인 두 기관과 공동주최한다는 것은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행사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 화상회의로 진행되는 이번 포럼은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는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MBC뉴스 김철원입니다.  
김철원
2020-10-07
[VOD]518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