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 5월 민중항쟁이 거행됐던
광주 금남로에 시민들이 집결했습니다.
전일빌딩 앞에서 금남공원까지
만 여명의 시민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습니다.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5.18 망언을 퍼부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을 반드시 퇴출시켜야한다고 외쳤습니다.
(현장음)-시민들
"(망언을 일삼은)국회의원은 당장 사퇴하라
사퇴하라 사퇴하라 사퇴하라"
범시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5.18의 역사를 부정하는 자유한국당과
극우 보수 세력이 더 이상 도발하지 못 하도록
온국민이 힘을 모아 응징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인터뷰)김종숙/광주시 동구
"국민이 연대하고 나라가 연대해서 저들을 응징해주시고 엄벌해주시고 다시는 자유한국당같은 망국당이 정치를 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정당 정치인들도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해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인터뷰)김동찬/광주시의회 의장
"더이상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을 이제 우리 국민의 힘으로 광주 시민의 힘으로 반드시 반드시 단죄해야 하는데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자유연대 등 극우단체 회원 2백여 명이
광주 금남로에서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지만
광주 시민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 했습니다.
다음주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5.18 역사 왜곡을 차단하기 위한
범국민궐기대회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1980년 5월 19일, 계엄군에게
산으로 끌려가 집단 성폭행을 당했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은
38 년째 정신질환을 앓으며
그날에 머물러있습니다.
◀INT▶
계엄군 성폭행 피해자 A 씨 가족/
"누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하고...그 뒤로는 완전히.. 지금까지도 1년에 주기적으로 1년에 한 번은 4,5월 되면 아파요. 주기적으로. "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이 피해 여학생처럼 성폭행 피해를 본
민간인 여성이 적어도 17 명 이상이라고
여성가족부 등 공동조사단이
공식 발표했습니다.
10대 여학생부터 30대 주부 등
평범한 여성들이 5.18 초기 진압에 투입됐던
계엄군들에게 끌려가 총으로 위협 당하며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피해 대다수가 집단성폭행입니다.
(C.G) 38년간 침묵해야했던 피해자들은
"지금도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스무살에 인생이 멈춰버렸다"며
고통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사망한 여성의
유방과 성기가 훼손된 모습을
목격했다는 진술도 확보했고,
여학생이나 임산부가 성추행 당한 사례,
연행과 구금 과정에서
성고문을 당한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INT▶
조진태 상임이사/ 5.18 기념재단
"여성(5.18 여성피해자)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따라야 해요. 이번에 17 명만 밝혀진 셈인데 본인이 말하지 못한, 알고 있어도 가족들이 쉬쉬하거나 했던 일들이 굉장히 많이 있을 걸로 보여서.."
공동조사단은 성폭력 발생장소가
계엄군 병력배치와 부대 이동경로와 유사해
가해자들의 소속부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가해자를 확정하고
성폭력 행위가 더 있었는지를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었다며 5.18 진상조사위원회가
추가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피해자 심리 치유와 더불어
국가차원 공식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제 11공수여단의 옛 전남도청 행진계획에 대한 입장은?(김후식 회장/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Q.6.25 기념 금남로 시가행진, 5.18 단체의 반응은?80년 오월에 많은 분들이 희생당한 곳, 전남도청.그곳에서 행진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Q.제 11공수여단은 어떤 부대?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에게 발포, 주남마을 주민 학살에 관여한 주력부대. 그 부대가 옛 전남도청에서 행진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됨.Q.2013년, 금남로에서 시가행진을 했었다는데 알고 있었나요?주변에 물어봐도 당시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어. 행여 당시 행사를 진행했더라도 다시 행진을 추진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어.Q.5.18 단체들의 입장은?구 도청 행진은 취소하길 요청, 금남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행진.또 군인은 배제해야하지 않나.Q.앞으로의 대응계획?광주시 및 지방 보훈처 방문 강력 항의 계획.

광주가 아닌 다른 데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한 전두환씨의 관할 이전 신청이 기각됐습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전씨가 주장하는 '재판의 공평을 유지하기 어려운 객관적 상황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담당하는 광주지법은 연기됐던 공판기일을 다시 정하고 취소됐던 방청권 추첨도 재개할 예정입니다. 지난 5월 3일 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는 이번 관할 이전 신청 등을 합해 재판을 세차례 연기시켰습니다.
2018-10-02

광주가 아닌 다른 데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한
전두환씨의 관할 이전 신청이 기각됐습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전씨가 주장하는
'재판의 공평을 유지하기 어려운
객관적 상황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신청을 기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담당하는 광주지법은
연기됐던 공판기일을 다시 정하고
취소됐던 방청권 추첨도 재개할 예정입니다.
지난 5월 3일 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는 이번 관할 이전 신청 등을 합해
재판을 세차례 연기시켰습니다.

<소셜 스페셜>'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우리가 몰랐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숨겨진 진실!*다큐 '두 개의 일기' 풀영상 보기 https://youtu.be/nbZbgAZhTQw* 기획: KUMI 에디터: 김은채 일러스트: 최규석 (웹툰 '송곳', '100도씨' 작가')
2018-06-10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몰랐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숨겨진 진실!
* 특집 다큐멘터리 '두 개의 일기' https://youtu.be/nbZbgAZhT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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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1학년이었던 동생은
1980년 5월 19일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엄군에게 산으로 끌려가
집단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누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하고...
그 뒤로는 완전히..
지금까지도 1년에 한 번씩은
4,5월 되면 아파요, 주기적으로..
다른 여고생 등 여성 2명도
계엄군 성폭행으로 정신병에 걸리거나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88년 광주특위 청문회 당시)
그때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죠
그 때 국회의원들, 그 보좌관들이
그런 질문할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이걸 누가 믿겠냐
5월 관계자들은
계엄군 성폭행을 어렵사리 증언했던
다른 여성들이 더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가해자를 찾을 수 있을지조차
우려스러운 진상규명의 앞날
황폐해져버린 피해 여성들의 삶과 죽음만이
가장 확실한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https://goo.gl/RHj2po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80년 5월 당시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려 편지를 띄웠던 여성을 찾고 있습니다. 5.18 기록관에 따르면 최용주 5.18 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이 지난해 미국 UCLA 동아시아도서관에서 80년 5월 23일 광주에 사는 한 여성이 항쟁 상황을 외신에 알리는 내용의 영문 텔렉스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편지에는 직접 목격한 계엄군의 만행과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등이 담겼습니다. 5.18 기록관은 "광주시민으로서는 처음으로 5.18을 세계에 알린 편지"라며 해당 편지가 광주에 있던 외신 기자를 통해 세계 각국에 전파됐다고 추정했습니다.
2018-05-16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이
80년 5월 당시
광주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려
편지를 띄웠던 여성을 찾고 있습니다.
5.18 기록관에 따르면
최용주 5.18 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이
지난해 미국 UCLA 동아시아도서관에서
80년 5월 23일 광주에 사는 한 여성이
항쟁 상황을 외신에 알리는 내용의
영문 텔렉스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편지에는 직접 목격한 계엄군의 만행과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등이 담겼습니다.
5.18 기록관은 "광주시민으로서는 처음으로
5.18을 세계에 알린 편지"라며
해당 편지가 광주에 있던 외신 기자를 통해
세계 각국에 전파됐다고 추정했습니다.